문화예술가를 위한 비즈니스 수업(아트프레너 성장 소설)_프롤로그

프롤로그
좋아하는 일이 나를 무너뜨릴 때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서연은 텅 빈 갤러리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2주간의 개인전. 준비하는 데 8개월, 대출받은 돈 500만 원. 그리고 방명록에 적힌 이름은 고작 열여덞 개. 그중 열두 명은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
갤러리 매니저가 다가와 말했다. 서연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정산은 다음 주에 연락드릴게요."
정산. 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판매된 작품은 단 두 점. 그나마 하나는 엄마가 사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동기가 의리로 구매한 것이었다. 갤러리 수수료를 빼면 손에 쥐는 돈은 80만 원 남짓. 500만 원을 투자해서 80만 원을 번 셈이었다.
아니, 벌었다고 할 수 있을까.
서연은 가장 아끼는 작품 앞에 섰다. '새벽 물안개'라는 이름을 붙인 다기 세트였다. 여명의 물안개를 담아낸 영롱한 빛깔. 이 색을 얻기 위해 열 두 번을 굽고 깨뜨리고 다시 만들었다. 최종 완성된 것은 열 세 번째 시도였다. 가격표에는 12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2주 동안 이 작품 앞에 멈춰 선 사람은 많았다. 아름답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서연은 한숨을 쉬며 방명록을 펼쳤다. 열세 개의 이름 아래, 누군가 연필로 휘갈겨 쓴 글씨가 보였다.
'작품은 예쁜데, 누구한테 팔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심장이 내려앉았다.
갤러리 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볼을 때렸다.
서연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빙빙 돌았다. 이번 달 월세 45만 원. 작업실 임대료 30만 원. 재료비 신용카드 대금 60만 원. 그리고 갚아야 할 대출금.
도자기 그만두고 취업할까.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서른두 살.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졸업 후 5년간 오직 도자기만 만들어 왔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건 '개인전 3회'뿐이었다.
5년 동안 뭘 한 거지.
지하철역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에는 엄마의 카톡이 와 있었다.
- 서연아, 전시 잘 끝났어? 수고했어 우리 딸 ❤️ 다음엔 더 잘 될 거야. 힘내!-
서연은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더 잘 될 거야'라는 말이 오히려 가슴을 후볐다.
더 잘 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실례합니다."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에 낡은 가죽 가방.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눈매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혹시 방금 그 갤러리에서 전시하신 분 맞죠? 도자기."
"네? 아, 네..."
서연은 당황해서 일어섰다. 남자는 손에 든 종이컵 커피를 벤치 한쪽에 내려놓더니 말했다.
"전시 보고 나오는 길에 봤어요. 작품, 누구한테 팔고 싶으세요?"
"네?"
"전시회요.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연 거예요?"
서연은 어이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앉더니 질문을 해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답하고 싶어졌다. 그 질문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야... 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요."
"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
남자가 되뇌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군데요?"
"..."
서연은 말문이 막혔다. 남자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대답 못 하시는 거 당연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네?"
"저도 예전에 그랬어요. 연극이 좋아서 배우 했는데, 관객이 안 왔어요.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러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안 오더라고요."
서연은 남자를 다시 봤다. 연극배우? 이 사람이?
"공연 끝나고 빈 객석 보면서 매일 생각했어요. 내 연기가 별로인가? 작품이 안 좋은 건가? 홍보를 안 해서 그런가?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그럼 뭐였는데요?"
"'모두'한테 보여주려고 했던 게 문제였어요."
남자가 서연을 똑바로 바라봤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객이 아니에요.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고객이 아니에요. 그건 그냥... 허공이에요."
바람이 불었다. 서연은 목도리를 여미며 남자의 말을 곱씹었다.
허공.
맞는 말이었다.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그게 대체 누구란 말인가.
20대 여성? 50대 남성? 신혼부부? 자취생? 요리사? 티 컬렉터?
5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면서 단 한 번도 '누가 이걸 살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좋은 작품을 만들면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사업은 교환이에요."
남자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만든 걸 주고, 상대방한테 돈을 받는 거죠. 근데 교환이 되려면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해요. 내가 주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 교환이 안 돼요."
"..."
"작가님 작품, 저 봤어요. 솔직히 예뻤어요. 기술도 좋고. 근데 전시장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거 누가 사지?' 그 질문에 답이 안 떠올랐어요."
서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관심 있으세요?"
"..."
"알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서연은 남자가 주머니에서 꺼낸 명함을 받아들었다.
"저도 한때는 배우였어요. 연극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건 못 하겠더라고요. 근데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었어요."
남자가 일어섰다.
"..."
"작가님, 도자기 좋아하세요?"
".. 네. 좋아해요."
"그럼 배워야 해요."
"뭘요?"
"예술가로 남으면서 경영자가 되는 법이요."
K가 떠나고, 서연은 한참 동안 명함을 들여다봤다.
예술가로 남으면서 경영자가 되는 법.
솔직히 '경영'이라는 단어가 불편했다. 예술에 돈 이야기를 붙이는 게 뭔가 순수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작품을 '상품'으로 보는 것 같아서.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5년간 작업만 했다. 좋은 흙을 찾아다녔고, 유약 연구을 했고, 가마 온도를 1도 단위로 조절하며 실험했다. 기술은 분명히 늘었다.
그런데 통장 잔고는 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줄었다.
좋아하는 일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어.
그 자각이 가슴을 찔렀다.
서연은 스마트폰을 꺼내 명함에 적힌 번호를 저장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아까 만난 도자기 작가 서연입니다. 어디로 가야 되나요?-
잠시 후, 스마트폰이 울렸다.
- 내일 오후 3시, 주소 보낼게요. 하나만 생각해오세요. 내 작품을 살 '단 한 사람'은 누구인가.-
내 작품을 살 단 한 사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서연은 일어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내일....
[Part 1. S - Spot the Niche/ 1장 고객이 없는 예술가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