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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가를 위한 비즈니스 수업(아트프레너 성장 소설)_2장. 당신의 '단 한 사람'은 누구인가

문화예술가를 위한 비즈니스 수업
작성자
주식회사 쉼
작성일
2026-01-18 20:09
조회
76

 

2장. 당신의 '단 한 사람'은 누구인가


일주일 후, 여기, 그곳 사무실.

서연은 노트를 펼쳐 K 앞에 내밀었다.

"해왔어요. 페르소나."

K가 노트를 받아 들었다. 서연이 적은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내 작품을 살 단 한 사람

이름: 김지현 나이: 34세

직업: IT회사 마케터

사는 곳: 서울 마포구 가족: 남편 + 딸 (4세)

상황: 바쁜 직장생활, 아이 돌봄, 지침

원하는 것: 주말 아침, 가족과 함께 쓸 예쁜 그릇

고민: 플라스틱 싫지만 도자기는 깨질까 걱정

예산: 10-15만 원 정도

"어떻게 해요? 잘한 거예요?"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K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번 주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김지현'이 됐네요."

"휴, 다행이다."

"근데."

K가 노트를 내려놓았다.

"아직 부족해요."

"네?"

"김지현 씨가 안 보여요."

서연은 당황했다. 분명히 이름도 적고, 나이도 적고, 직업도 적었는데.

"뭐가 부족한데요? 다 적었는데..."

"정보는 다 있어요. 근데 '사람'이 없어요."

K가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서연 씨, 김지현 씨 얼굴이 그려져요?"

"얼굴이요?"

"네. 눈 감고 김지현 씨 상상해 보세요. 어떻게 생겼어요? 무슨 옷 입어요? 어떤 표정이에요?"

서연은 눈을 감았다. 34세, IT회사 마케터, 마포구... 머릿속에 뭔가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잘... 안 그려져요."

"그렇죠. 지금 김지현 씨는 '데이터'예요. '사람'이 아니라."

K가 마커를 들었다.

"오늘은 김지현 씨를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볼 거예요."


K가 화이트보드에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눈, 코, 입을 단순하게 그려 넣었다. 졸라맨 같은 얼굴.

"이게 김지현 씨라고 해볼게요."

그리고 원 주변에 여러 개의 빈칸을 만들었다.

"페르소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다섯 가지 레이어를 채워야 해요."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페르소나 5 Layers

Demographics (인구통계): 누구인가?

Situation (상황): 지금 어떤 상태인가?

Pain (고통): 뭐가 불편한가?

Desire (욕망): 뭘 원하는가?

Trigger (계기): 왜 '지금' 사려고 하는가?

"서연 씨가 적은 건 1번과 2번 일부예요. 나머지가 비어 있어요."

서연은 자신의 노트를 다시 봤다. K의 말이 맞았다. 이름, 나이, 직업, 가족. 전부 '정보'였다.

"3번부터 다시 해볼게요."

K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자, 김지현 씨가 지금 '고통'스러운 게 뭐예요?"

"음... 바쁘니까 지친 거요?"

"더 구체적으로요. '지쳤다'는 너무 추상적이에요. 언제 지쳐요? 어떤 상황에서요?"

서연은 생각했다. 34세, 워킹맘, IT회사 마케터...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요?"

"왜요?"

"아이 깨우고,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어린이집 보내고... 그러면서 자기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때 기분이 어때요?"

"전쟁 같겠죠. 정신없고, 짜증나고..."

"그럼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해요?"

서연은 상상해 봤다. 바쁜 아침, 4살 아이, 출근 준비.

"대충... 먹겠죠. 시리얼이나 빵이나. 아니면 아예 안 먹거나."

"그릇은요?"

"플라스틱이요. 아이가 깨뜨릴까 봐."

"그 플라스틱 그릇을 볼 때 기분이 어때요?"

서연은 잠시 멈췄다. K의 질문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좀... 우울하지 않을까요?"

"왜요?"

"맨날 이렇게 사는 것 같아서요. 바쁘고, 정신없고, 대충 먹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플라스틱 그릇에 시리얼 던져주는 엄마..."

말하다 보니 서연 자신도 뭔가 감정이 올라왔다.

"그게 Pain이에요."

K가 말했다.

"'바빠서 지친다'가 아니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괴롭다'. 이게 진짜 고통이에요."


K가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3. Pain (고통)

바쁜 일상에 치여 '대충' 사는 느낌

좋은 엄마/아내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부족한 것 같음

플라스틱 그릇 = 내 삶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우울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할까" 자괴감

"이제 4번. Desire. 김지현 씨가 진짜 원하는 게 뭐예요?"

"예쁜 그릇이요."

"그건 수단이에요. 진짜 원하는 건 뭐예요?"

서연은 생각했다. 예쁜 그릇을 사면... 뭐가 달라지지?

"음... 기분이 좋아지는 거요?"

"왜 기분이 좋아져요?"

"그릇이 예쁘니까... 밥 먹을 때 기분이 좋고..."

"더 깊이요. 김지현 씨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예쁜 도자기 그릇이 식탁에 있으면, 김지현 씨한테 어떤 의미예요?"

서연은 눈을 감고 상상했다. 일요일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식탁. 예쁜 도자기 그릇에 담긴 음식. 남편과 아이가 마주 앉아 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살아'라고... 느끼고 싶은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요?"

"여유 있게요. 대충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그게 Desire예요."

K가 적었다.

4. Desire (욕망)

'대충'이 아닌 '제대로' 살고 싶음

가족에게 정성을 쏟는 엄마/아내이고 싶음

일요일 아침, 예쁜 그릇으로 차린 식탁 = "우리 가족의 여유"

그릇 하나로 삶의 질이 달라지는 느낌을 원함

"보여요? 김지현 씨가 사는 건 '도자기 그릇'이 아니에요."

K가 말했다.

"'여유 있는 가족의 일상'을 사는 거예요. 그릇은 그걸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에요."

서연이 느릿하게 말을 받았다.

".. 아... 그러네요."

"이게 진짜 욕망을 찾는 거예요. 표면적으로는 '그릇이 필요해'지만, 깊이 들어가면 '이런 삶을 살고 싶어'인 거죠."


"마지막. 5번. Trigger."

K가 말했다.

"김지현 씨가 '왜 하필 지금' 도자기를 사려고 할까요?"

"음... 필요하니까요?"

"필요한 건 항상 필요해요. 근데 왜 '오늘' 검색하고, '이번 주'에 사려고 할까요? 무슨 계기가 있어요?"

서연은 생각했다. 갑자기 도자기를 사고 싶어지는 순간...

"아, 인스타그램이요."

"뭘 봤는데요?"

"다른 사람 집 사진이요. 예쁜 식탁, 예쁜 그릇.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하는 순간."

"또요?"

"결혼기념일이나 이사 같은 거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을 때."

"또요?"

"아이가 크면서... 이제 도자기 써도 될 것 같을 때?"

K가 고개를 끄덕이며 적었다.

5. Trigger (계기)

인스타에서 예쁜 식탁/그릇 사진 봄 → "나도 저렇게"

결혼기념일, 이사, 생일 등 '새 시작' 시점

아이가 조금 커서 도자기 써도 될 것 같은 시기 (4-5세)

연말/연초, 새해 다짐 "올해는 좀 더 여유롭게 살자"

"이게 왜 중요한지 알아요?"

K가 물었다.

"마케팅 타이밍이요?"

"맞아요. Trigger를 알면, '언제' 김지현 씨 앞에 나타나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

K가 설명했다.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 2주 전에 인스타 광고를 돌리면? 이사 시즌인 봄에 '새 집에 어울리는 그릇' 콘텐츠를 올리면? 타이밍이 맞으면 전환율이 확 올라가요."

"아..."

"Trigger를 모르면 1년 내내 똑같은 콘텐츠를 올려요. 근데 그러면 효율이 떨어져요. '지금 살 이유'가 없으니까."


K가 화이트보드 전체를 가리켰다.

"자, 이제 김지현 씨 보여요?"

서연은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아까 그린 졸라맨 얼굴 주변에 빽빽하게 적힌 글씨들.

김지현 (34세, 마포구, IT마케터, 워킹맘)

Pain: 대충 사는 것 같아서 괴로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자괴감 Desire: 여유 있는 가족의 일상, 정성을 쏟는 삶

Trigger: 인스타 예쁜 집 사진, 기념일, 아이 성장 시점

"보여요."

서연이 말했다.

"아까보다 훨씬... 생생해요. 이름만 있을 때랑 완전히 달라요."

"이제 김지현 씨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겠어요?"

서연은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예쁜 도자기 그릇입니다'가 아니라..."

"응."

"'일요일 아침,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위한 그릇입니다'. 이런 식이요?"

"정확해요."

K가 웃었다.

"그게 '고객의 언어'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고객이 듣고 싶은 말."


K가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자, 이제 테스트해 볼게요."

"테스트요?"

"네. 진짜 김지현 씨가 반응할지."

K가 종이에 두 개의 문장을 적었다.

A안: 장인의 손길로 빚은 수제 도자기, 1,260도 고온에서 구워낸 명품 찻잔 세트

B안: 바쁜 일상 속 잠깐의 여유, 일요일 아침 가족과 함께 쓰는 첫 번째 도자기

"서연 씨가 김지현이라면, 어떤 게 마음에 들어요?"

서연은 두 문장을 번갈아 봤다.

A안은... 익숙했다. 자신이 늘 쓰던 방식. 기술, 장인, 명품.

B안은... 뭔가 달랐다. 기술 얘기는 없는데, 왜인지 끌렸다.

"B요."

"왜요?"

"A는... 그릇 자랑 같아요. 근데 B는... 내 얘기 같아요."

"맞아요. A는 '공급자의 언어'예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지. B는 '고객의 언어'예요. 이걸 쓰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K가 A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술가들 대부분이 A로 말해요. '1,260도', '12번 유약', '전통 기법'. 전부 자기 얘기예요. 고객은 그거 관심 없어요."

"근데 그게 작품의 가치인데..."

"가치는 맞아요. 근데 그건 '사고 나서' 알아도 되는 거예요. '사기 전'에는 다른 게 필요해요."

"뭔데요?"

"'이게 왜 나한테 필요한지'요."

K가 말했다.

"고객은 3초 안에 결정해요. 이거 볼까 말까. 3초 안에 '내 얘기다'라고 느끼게 해야 해요. 기술 자랑은 그 3초를 통과한 다음에 해도 돼요."


"그러면요."

서연이 물었다.

"김지현 씨만 노리면, 다른 고객들은 어떻게 해요? 시장이 너무 좁아지는 거 아니에요?"

좋은 질문이었다. K도 이 질문을 기다린 것 같았다.

"반대예요."

"네?"

"좁히면 넓어져요."

K가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첫 번째 그림: 큰 원 하나. 안에 '100만 명'이라고 적음.

"이게 '도자기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에요. 서연 씨가 이 100만 명한테 말하면?"

"아무도 안 들어요. 저번에 배웠죠."

"맞아요. 왜냐면 '내 얘기'가 아니니까."

두 번째 그림: 작은 원 하나. 안에 '1만 명'이라고 적음.

"이게 '김지현 같은 사람들'이에요. 30대 워킹맘, 아이 있고, 여유로운 일상을 원하는 사람들."

"훨씬 적네요."

"적죠. 근데요."

K가 작은 원에서 바깥으로 화살표를 여러 개 그렸다.

"김지현한테 제대로 말하면, 김지현이 퍼뜨려요."

"퍼뜨려요?"

"네. '이거 봐, 나한테 딱이야'라고 느끼면 공유해요. 친구한테, SNS에. 그러면 김지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요."

"아..."

"100만 명한테 흐릿하게 말하는 것보다, 1만 명한테 강렬하게 말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한테 닿아요. 왜냐면 강렬한 메시지는 퍼지거든요."

K가 숫자를 적었다.

100만 명 × 0.01% 반응 = 100명 1만 명 × 3% 반응 = 300명

"대충 100만 명한테 뿌리면, 반응률 0.01%. 100명이 반응해요. 근데 딱 맞는 1만 명한테 제대로 말하면, 반응률 3%. 300명이 반응해요."

"세 배네요."

"그리고 그 300명이 각자 3명씩만 공유해도?"

"900명..."

"1,200명이 되죠. 눈덩이처럼 불어나요."

K가 펜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좁히면 넓어진다'예요. 역설적이지만, 시장에서 검증된 원리예요."


서연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지난 5년간 자신이 해온 방식이 떠올랐다. 전시회 포스터에 '수제 도자기 개인전'이라고만 적었다. 인스타그램에 '유약 테스트 중'이라고만 올렸다.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한 번도 생각 안 했다.

그냥 '도자기 좋아하는 사람들 보겠지' 했다.

그래서 아무도 안 왔구나.

"근데 만약에요. 김지현 같은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어떻게 해요? 제가 상상한 고객이 실제로는 없는 거면요?"

"좋은 질문이에요."

K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검증'이 필요해요."

"검증이요?"

"페르소나는 결국 '가설'이에요. 김지현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내 작품을 살 것이다. 이건 아직 검증 안 된 가설이에요."

"그럼 어떻게 검증해요?"

"직접 물어보는 거예요."

K가 말했다.

"김지현 같은 사람을 찾아서, 진짜 물어보는 거예요. '이런 그릇 필요해요? 얼마면 살 거예요? 어디서 사고 싶어요?' 직접."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요. 근데 그건 다음 단계에서 배울 거예요. 오늘은 일단 페르소나 완성하는 게 숙제예요."

K가 새로운 종이를 건넸다.

"이번 주 숙제예요."


숙제 2. 페르소나 완성본

5 Layers 전부 채우기 (Demographics, Situation, Pain, Desire, Trigger)

김지현에게 보내는 한 줄 메시지 작성 (B안 스타일로)

김지현 같은 실제 사람 3명 찾기 (주변에서 or SNS에서)

그 사람들의 공통점 메모하기

"3번이 중요해요."

K가 말했다.

"머릿속 김지현이 아니라, 실제 김지현을 찾아야 해요. 서연 씨 주변에 30대 워킹맘 없어요?"

서연은 생각했다. 대학 동기 중에... 회사 다니는 친구들. 결혼하고 아이 낳은 친구들.

"몇 명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커피 한 잔 사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그릇 얘기 말고, 그냥 '요즘 어때?'부터 시작해서. 뭐가 힘든지, 뭘 사고 싶은지, 집에서 뭘 쓰는지."

"그냥 수다 떠는 거예요?"

"네. 근데 귀를 열고 떠는 수다예요. '내 작품 팔려고' 듣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뭘 원하나' 듣는 거예요."

K가 일어섰다.

"페르소나는 책상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현장에서 완성되는 거예요. 실제 사람을 만나면, 생각지도 못한 게 나와요."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 서연 씨는 '도자기는 깨질까 봐 걱정'이라고 썼잖아요. 근데 실제로 만나보면 '사실 깨지는 건 괜찮은데,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아..."

"내 생각과 실제가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만나봐야 해요. 상상만 하면 안 돼요."


여기, 그곳 사무실을 나서며 서연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카톡 친구 목록을 스크롤했다. 대학 동기들. 고등학교 친구들.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 윤정 - 대학 동기, 35세, 디자인 회사 근무, 아이 2명

  • 수현 - 고등학교 친구, 33세, 마케팅 회사 근무, 아이 1명

  • 혜원 - 대학 선배, 37세, 프리랜서 번역가, 아이 1명

전부 '김지현' 같은 사람들이었다. 워킹맘. 바쁜 일상.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사람들.

서연은 윤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윤정아, 오랜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 시간 되면 커피 한 잔 하자. 그냥 수다 떨고 싶어서 ㅎㅎ-

답장이 금방 왔다.

- 서연아! 진짜 오랜만이다 ㅠㅠ 요즘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어 그래도 너 만나면 좋겠다 토요일 낮에 괜찮아? -

서연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좋아! 토요일에 보자. -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김지현을 만나러 간다.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고객'을 만나러 가는 것. 작품을 팔러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것.

어떤 얘기가 나올까.

긴장도 됐지만, 묘하게 설레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5년간 작업실에만 있었다. 흙을 만지고, 가마를 돌리고, 유약을 연구했다. 그 시간 동안 '고객'은 머릿속에 없었다.

이제는 다르게 해보자.

서연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토요일 오후, 마포구의 한 카페.

윤정은 서연보다 먼저 와 있었다. 대학 때보다 살이 조금 쪘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은 여전했다.

"서연아, 진짜 오랜만이다!"

"응, 윤정아. 잘 지냈어?"

둘은 반갑게 포옹했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야, 너 아직도 도자기 해?"

"응, 하고 있어."

"대단하다. 나는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는데. 도자기 계속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걱정했거든."

"ㅎㅎ 걱정할 만했어. 나도 요즘 힘들어."

"왜? 무슨 일 있어?"

서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작품이 안 팔려."

"아..."

"5년 동안 했는데, 아직도 제자리야. 그래서 요즘 많이 고민 중이야."

윤정이 서연의 손을 잡았다.

"힘들었겠다. 근데 너 작품 예쁘잖아. 인스타에서 봤어."

"고마워. 근데 예쁜 거랑 팔리는 거랑은 다르더라."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윤정이 말했다.

"근데 왜 갑자기 만나자고 했어? 무슨 일 있어?"

서연은 잠시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수다만 떨까.

솔직하게 말하자.

"사실은...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너, 집에서 어떤 그릇 써?"

"그릇? 갑자기?"

"응. 그냥 궁금해서."

윤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해 줬다.

"음... 이케아에서 산 거? 아니면 다이소?"

"왜 그런 거 써?"

"애들이 맨날 깨뜨리니까. 비싼 거 사봤자 소용없어. 한 달에 하나씩은 깨지거든."

"아..."

"근데 왜 그릇 얘기야?"

서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예쁜 그릇 쓰고 싶은 적 없어?"

윤정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있지."

"언제?"

"일요일 아침에. 애들이 늦잠 자고, 나도 좀 여유 있을 때. 그때 예쁜 그릇에 밥 차려서 먹고 싶어. 인스타에서 보는 것처럼."

"인스타에서 뭘 봤는데?"

"예쁜 식탁 사진 있잖아. 브런치 카페 같은 거.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생각 들 때 있어."

서연의 심장이 쿵 뛰었다.

K가 말한 그대로다.

"근데 왜 안 사?"

"비싸잖아. 그리고 어차피 애들이 깨뜨릴 텐데."

"만약에... 안 비싸고, 깨져도 괜찮은 도자기가 있으면?"

"그런 게 있어?"

"음... 있다고 치면. 얼마면 살 것 같아?"

윤정은 생각했다.

"한 5만 원? 아니, 예쁘면 10만 원까지는 줄 수 있을 것 같아."

"진짜?"

"응. 근데 진짜 예뻐야 해. 그리고..."

윤정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전자레인지 돌아가야 해."

"네?"

"애들 밥 데울 때 전자레인지 많이 쓰거든. 도자기가 전자레인지 안 되면 불편해."

서연은 깜짝 놀랐다.

이건 생각 못 했다.

"아... 그렇구나."

"응. 그리고 식기세척기도. 요즘 누가 손으로 설거지해? 식기세척기 되는 게 중요해."

이것도 생각 못 했다.

서연은 머릿속으로 자신의 작품을 떠올렸다.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한 번도 고려 안 했다. 그냥 예쁘게 만드는 것만 생각했다.

고객이 원하는 건 이런 거였구나.


카페를 나오며 서연은 노트를 펼쳐 메모했다.

윤정 인터뷰 정리

현재: 이케아/다이소 그릇 사용 (애들이 깨뜨려서)

원하는 것: 예쁜 그릇, 일요일 아침 여유로운 식탁

트리거: 인스타 예쁜 식탁 사진

예산: 5-10만 원

필수 조건: 전자레인지 OK, 식기세척기 OK

숨은 니즈: "깨져도 너무 아깝지 않은 가격"

마지막 줄에 밑줄을 쳤다.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책상에서 상상했으면 절대 못 찾았을 정보였다. 실제로 만나니까 나온 것.

K 말이 맞았다.

페르소나는 현장에서 완성된다.

서연은 다음 약속을 잡기 위해 수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일주일 동안 서연은 세 명을 더 만났다.

수현, 혜원, 그리고 SNS로 연결된 팔로워 한 명.

전부 '김지현' 같은 사람들이었다. 30대 워킹맘, 아이 있음, 바쁜 일상.

그리고 전부 비슷한 말을 했다.

"예쁜 그릇 쓰고 싶어. 근데 비싸고, 관리가 어려워서."

"전자레인지 되는 게 중요해."

"아이랑 같이 쓸 수 있으면 좋겠어."

노트가 빼곡하게 채워졌다.

서연은 그 노트를 들고 다시 '여기, 그곳'을 찾았다.


[3장. 니치 마켓,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로 이어집니다]